계산하는 곰을 좋아하세요?

2017. 8. 13. 17:10~2017년/text

생산성과 비생산성, 사잇길은 없을까

(부제: 계산하는 곰을 좋아하세요?)



얼마 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예술인일자리포럼을 다녀왔다. 내가 몸을 담고 있는 단체가 준비하고 있는 포럼의 진행에 있어 참고를 위한 방문이었기 때문에 내용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이 날 진행된 내용의 일부는 다소 무례하거나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대강의 기조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까.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예술인 당신들은 아직도 순수성을 버리지 못하는 아이같다. 어서 기업가정신을 탑재하고 창업과 비지니스의 세계로 뛰어들라.'

다 큰 성인들에게 아이 훈계하듯 하는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날 포럼의 진단에서도 나왔듯이 5년 이상 지속되는 신생사업체의 비율이 해가 갈 수록 줄어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것도 현실에서 준비되고 훈련되지 않은 '순수한' 예술인에게 창업을 해보라,고 권유하는 것은 그 말이 듣는 이들(예술가)을 정말 위한 것이라기보다 정부의 논조에 맞춰서 자신(강사)의 발언을 다듬은 것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또 이 판-공익과 경제행위가 뒤섞인 영역-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터에 이 곳에서 둥둥 떠다니는 희망섞인 말들이 여러모로 좀 위태해 보였다.

나로서는 이런 류의 이야기가 처음은 아니기에 별 감정은 없었지만 내 동행인과 참석자들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질의 응답 시간에는 행사참여자와 강사 사이에 이러한 대화가 오갔다.

- 참여예술인 :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대안을 듣기 바라는 마음을 갖고 왔는데 듣는 내내 질책을 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희의 예술창작행위는 생산행위입니까 아닙니까? (강사: 생산행위죠) 그런데 마치 이 둘을 나눠서 저희는 비생산행위, 기업행위는 생산행위로 나눠서 우리를 마치 쓸모없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상 기업행위는 무상으로 진행된 창작의 행위를 기업에서 거져 자신을 위한 수익행위로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역시 그런 케이스죠.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가져가는 꼴인데, 오늘 나온 진단은 그런 곰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곰에게 곰아, 너가 이제 기업행위를 해봐, 라는 것으로 들립니다.

- 강사: 저도 예술가 여러분들의 어려운 현실을 잘 느끼고 있고 많은 도움을 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에서는 곰이 변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계산하는 곰으로요.

오늘의 하일라이트라고 할까.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을 보는 듯도 했다. 한편으로는 아직 스스로 서지 못한 나를 비롯한 이들의 처연함과 굴욕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나마 스스로 정리된 항의의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내 곁의 창작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문 옆에 달린 전기 스위치가 그동안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둠을 밝혀온 장작과 초, 등잔을 몰아냈다. 고압 전선에서 흘러나오는 빛과 부드러운 화장지가 없다는 이유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에게 가난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기대는 커지는 반면, 자신의 능력에 대한 낙관적 믿음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사그러졌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p.23>

책의 저자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부임한 멕시코의 한 작은 마을에서 가난하지만 당당한 모습의 사람들이 외부에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투기 자본이 들어오고 마을이 더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들로 나뉘어지게 되면서,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무능력해서 가난한 것이라는 사실을 사회에서 낙인을 찍듯이 받아들이게 되는 이중의 고통을 목격한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진보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허용하고 장려하는 교황청과 불화하고 결국에는 자신의 사제직을 버리게 되는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 땅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분별없이 쏟아지는 환상과 그에 섞여들어오는 기회들을 한꺼번에 속 시원하게 쏟아버릴 수는 없는 것이 문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는,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노를 저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새롭게 결핍을 만들어내는 환상(당신도 할 수 있다!)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비전을 세울까. 어떻게 하면 자신과 체질적으로 다른 이들과도 커뮤니케이션하고 막연한 적개심이나 순수함으로 벽을 세우기보다 때로는 '장사꾼의 모자'를 쓰고 적절히 대처하는 요령을 배울까. 어떻게 하면 기회를 가장 중심에 둔채 상대에게 진정한 관심을 갖지 않는 '계산하는 곰'으로 완전히 변모하지 않고 풍부한 관계 속에서 자신과 공공을 위한 재주(창작행위)를 삶 속에서 지속할 수 있도록 서로 현명하게 돕는 '함께 하는 곰'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 좀 더 이어가게 될지도 모를 이 글을 언젠가 만나게 될지 모르는 어떤 이들에 대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 그리고 함께 지혜를 모으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띄운다.


2017. 8. 13. 초안  

2017. 8. 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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