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나무

2017. 7. 4. 00:49~2017년/text


나는 내게 상처를 낸다

나는 네게 너는 내게 상처를 입힌다

알아달라고, 너는 나를 알아달라고 

온 마음을 다해 외치지만 

사실은 너도 나도 

서로를 알고 싶지 않았다 


반성은 느리고 애매해지고

판단은 빠르고 집요하고 구체적이다

나는 언제나 어쩐지 옳고

너는 언제나 어쩐지 나쁘다 

반성은 언제나 서둘러 작아지며 

비난은 언제나 서둘러 커지고 얼룩처럼 번진다 


지난 시간은 

별 것 아닌 것처럼

슥 

밀어낸다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슥 

베어낸다

진정성 있는 너도

거짓된 나도


경멸로 증오로 뗀 발자국은 

다시 돌아가는 법이 없다 

이미 밟았던 발판을 포기하기엔 

불안하고 내가 작아질 순 없으니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 

너도 나도 잘못된 발판을 따라 

끊임없이 밟아가며 

우리는 서로 멀어진다


너는 나를 이해 못해 

결국 너도 별거 없었어 


지겨운 이 싸움을 

우리는 탐닉하고 

우리는 벗어나지 못한다 


영원?

누가 그런 것을 원한다는 말인가 

자기 자신 안에서 한 없이 만족하는 

누에고치 같은 존재나 그럴까 


우리는 참호를 파놓은 채 

그저 칼 끝만을 피하기를 바라며

그저 자신만을 바라보는 

거울 속에서 산다 


진실과 사랑과 희망의 순간은 아주 짧고 

나머지는 이미 주어진 착각 속에서 

시간이 흘러갈 뿐인 이 곳에서 

영원 같은 것을 왜 바라겠는가


그저 나는 바란다

이 수많은 상처들과 

진절머리가 나는 약점을 안고 

서로를 베어대는 아수라장 속에서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고 

어떤 욕망도 느끼지 않는- 


그저  

바람결에 따라 선선히 움직일 뿐인 

보라색 나무 한그루가 

내 안에서 자라기를 바랄 뿐 

미움도 정도 사랑도 없이

그저 오롯이 자신의 자리에 선 

그 나무 한 그루가 내 안에 서기를


내가 그렇기를 

이 덧 없음을 따라서

너무도 가볍고 정확한 템포로 

흔들리고 

살아가고 

사라지기를

'~2017년 > tex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숨막히는 언어들  (0) 2017.08.21
계산하는 곰을 좋아하세요?  (0) 2017.08.13
침묵  (0) 2017.03.12
대소  (0) 2017.02.11
나선형을 따라 걷기위한 보행법  (0) 2016.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