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사람들

2018. 10. 6. 15:20카테고리 없음

오랫동안 정리를 끝내지 못한 6mm dv테이프들 사이에 잠자고 있는 인터뷰 중에서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 진행했던 일본의 시민/예술단체 민들레의 집 하리마 야스오님과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창립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자고 기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지나치게 공식적인 발언만을 들을 수 있었고, 이에 인터뷰의 경계를 허물고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마음에 시도했던 취중인터뷰.

그 때 나눴던 많은 대화 중에서 기억에 남는 단어는 '흔들림'입니다.

"다들 흔들리지 말아야 돼, 번민하지 말아야 된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흔들려도 괜찮다고, 흔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 찍는 휘르상(일본에서의 제 별칭)도 여기 있는 사람들을 찍을 때 나는 흔들리지 말아야 돼 하고, 똑바른 상태에서 거리를 두고 찍는 것이 아니라 찍히는 사람과 함께 흔들려야 합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그런 존재니까요."

질문하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통역관도 없이 서로의 모든 말들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지만 술에 취해 너울너울 흔들리는 가운데에서도 '좋은 대화를 나눴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함께하는 창작자들 중에서는 최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장애인인가, 장애인이란 뭐지. 왜 명확하게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지.

장애와 예술과 교육과 문화와 여러가지가 범벅되서 섞여있는 영역에 있다보면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일과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묻게 됩니다. 나는 예술간가 나 뭐하는 사람이지. 예술 뭐지. 예술가 뭐지. 다큐감독이라고 소개하는데 언제가 마지막 다큐였지.

나 역시 온전히 이타적이지도 이기적이지도, 헌신하는 사람도 욕망에 따르는 사람도 정상도 비정상도 예술가도 사회복지사업가도 아닌 그저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다가도 흔들리고 할 일을 하려고 애쓰지만 실수하고 후회하고 그래도 멈추지는 않으려 애쓰는, 평범하거나 그에 못미치는 사람.

그런 사실에 어떻게 조금은 덜 괴롭게, 조금은 더 즐겁게, 자신과 내 주변의 고민하고 방황하는 마음 그 자체를 관대하게 껴안고 흔들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끊어지지-끊어버리지 않은채로 이어갈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